양귀비 이야기
8세기 초, 현명하고 재능 있는 당 현종은 천자(天子)로서 황위에 올랐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제국을 개혁하고 강화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당나라는 전례 없는 번영을 누렸고 세력을 넓혔으며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엄청난 발전을 거두었다.
당나라의 초대 황제는 자신을 도가의 창시자인 노자의 자손이라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현종도 독실히 도가를 따랐다. 그런데 그의 통치 말기에 도가에서 말하는 물극필반(物極必反,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의 상황이 발생했다. 대신과 장군들이 득세하고 군사 원정은 실패로 끝났으며 기근이 닥치고 자연재해가 발생하면서 황권은 약화되었다. 누구의 책임인가?
이 역사적 사건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 한 명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바로 황제가 총애하는 후궁 양귀비로, 이 찬란했던 왕조를 빠르게 쇠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과연 후궁 한 사람의 아름다움과 영향력 때문에 나라가 분열된 것일까? 아니면 혼란의 시기에 그저 손쉬운 희생양이었을 뿐인가?
모든 꽃을 보잘 것 없게 만드는 얼굴
737년 현종이 아끼던 후궁이 죽자, 그 어떤 것도 그의 우울함을 달래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황제 앞에 한 인물이 등장한다.
양귀비는 흐르는 구름 같은 머리카락과 모든 꽃을 부끄럽게 만드는 얼굴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황제는 첫 만남에서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그 후 현종은 양귀비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745년, 현종은 양귀비에게 황실 후궁의 최고 직급인 귀비(貴妃)라는 작위를 수여했다. 또한 양귀비의 친척들에게도 작위와 영예를 수여했는데, 그중에는 그녀의 죽은 부친까지 포함되었다.
양귀비의 삶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로 가득했다. 황제의 진주와도 같았던 그녀는 보석으로 한껏 치장하고 광택이 나는 비단 드레스를 입고 황제와 함께 화려한 세상을 거닐었다.
하지만 이 커플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동안 사방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수도와 멀리 떨어진 국경에서는 장군들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특히 황제 부부와 매우 우호적인 관계에 있던 안녹산(安祿山) 장군은 20만 대군을 모으면서 급부상했다.
한편 황궁 관리들은 양귀비의 가족들에게 뇌물을 주어 이권을 얻어 냈다. 게다가 황제가 양귀비와 함께 있으면서 국사를 소홀히 한다며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반란, 후퇴, 고뇌
755년 안녹산은 군대를 이끌고 중국 북부로 진격했다. 그가 남하하자 수많은 백성들이 그의 대열에 합류했다.
756년, 반란군은 당나라 수도 장안 외곽에 도착했다. 그리고 현종은 양귀비를 비롯한 많은 황실 가족들을 데리고 남쪽 험준한 산악지대를 통해 도망치는 피란길에 올라야했다.
하지만 마외역(馬嵬驛)에 도달했을 때 지치고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병사들이 폭발했다. 병사들은 현종에게 나라 전체를 고통으로 몰아넣은 ‘원인’인 양귀비를 제거하라고 간청했다. 양귀비가 죽지 않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황제는 결국... 동의했다.
황실 호위병들은 여전히 향기를 풍기며 보라색 비단에 쌓인 양귀비의 시신을 길가에 묻었다.
후일담
현종 일행이 남쪽으로 피난 가는 길에 그의 아들인 황태자가 황제로 추대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현종은 양위를 받아들이고 명예 황제인 태상황으로 물러났다. 새 황제가 반란군으로부터 장안을 탈환하자 노쇠한 현종도 궁으로 돌아왔다.
현종은 여생을 비교적 조용히 보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아끼던 후궁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현종은 양귀비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고, 매일 그녀의 초상화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일부 버전에서는 한 도사가 찾아와 가슴 아파하는 황제를 불쌍히 여겨 저승에 있는 양귀비와의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도사가 구름 속 궁전에서 그녀를 발견했을 때, 외로운 양귀비는 황제가 선물로 주었던 소중한 비녀와 보석 상자를 깨뜨렸다. 자신의 변함없는 헌신의 표시로써 그 조각들을 황제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역사는 양귀비를 고대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 뛰어난 외모와 재능으로 제국의 운명을 크게 바꾼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또한 양귀비의 이야기는 백거이(白居易)가 쓴 장편시 장한가(長恨歌)를 비롯해 천여 년 동안 수많은 문학 작품, 드라마, 오페라, 영화를 통해 영원히 전해지고 있다.
션윈 2023년 무용극 ‘당 현종과 양귀비’는 이 역사적 이야기를 중국고전무용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