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꼴 역사 인물 3편: 뮬란과 잔 다르크
중국 역사 속 인물과 똑 닮은 인물을 서양 역사에서 찾아보는 <닮은 꼴 역사 인물> 시리즈입니다.
중국의 뮬란과 프랑스의 잔 다르크는 “여전사”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인물들입니다. 모두 전투에서의 용맹함뿐 아니라 꿋꿋한 신념과 높은 절개로도 유명한데요. 이 같은 공통점 외에, 뚜렷이 다른 면도 있었다고 합니다.
자 그럼 뮬란부터 볼까요.
오늘날 서양에서 만화, 영화 등을 통해 유명해진 뮬란은, 동양에서는 2천 년 동안이나 회자되어 온 인물입니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고, 고향에 대하여는 설이 분분합니다. 역사 시기마다 새로운 이야기 버전이 출현했지만, 뮬란이라는 인물이 실존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흔히 화목란(花木蘭)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요. 꽃을 뜻하는 성씨 화(花)는 목련을 뜻하는 이름 뮬란(木蘭)과 예술적인 쌍을 이룹니다.
뮬란 이야기 중 가장 인기 있는 버전은 북위 시대(4~6세기경)의 서사시 목란사(木蘭辭)인데요. 몽골 유연(柔然)족과의 전쟁이 일어나자 집집마다 징병 통지가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뮬란의 연로한 아버지는 전쟁에 임할 형편이 못되었고, 외아들인 뮬란의 남동생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습니다. 효성 지극한 뮬란은 머리칼을 자르고 아버지의 갑옷을 챙겨 입고는 집을 떠났습니다.
전장에서 뮬란은 예리하고, 용감했으며 성공적인 전투를 치렀습니다. 그 와중에 병사들 사이에서 자신의 성별을 철저히 숨기기까지 했죠. 12년 후 그녀의 군대는 금의환향했고, 황제는 뮬란의 기량에 감탄해 “그”에게 황실의 벼슬을 내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뮬란은 공손히 이를 사양하면서 집에 돌아가 연로한 부모님을 봉양할 수 있도록 빠른 말 한 필만을 청했답니다.
한편, 수백 년 뒤 바다 건너에서는 잔 다르크가 전쟁터에서 이름을 떨쳤습니다. 100년 전쟁에서 유럽군을 승리로 이끌었죠.
뮬란과 마찬가지로, 잔 다르크(1412~1431년)도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프랑스 북동부의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지었죠. 어머니는 잔 다르크를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길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녀는 천성적으로 상냥했고, 단식과 기도를 했으며, 불우한 이웃을 도왔습니다.
13살이 되었을 때, 잔 다르크는 천사들, 심지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군을 지원해 영국과의 전쟁에서 잃어버린 땅을 되찾고 프랑스 황태자의 황위 계승을 돕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게 되었지요.
처음에 사람들은 이 농부의 딸을 못 미더워 했습니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신념으로 잔 다르크는 모든 장벽을 넘어 황태자와 면담을 성사시켰고, 결국 군 지휘권을 승인받았죠. 이후 일련의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여러 차례 승리로 이끌었고 군의 사기를 크게 드높였습니다. 많은 병사들에게 그녀는 장군을 넘어 정신적인 지도자였습니다.
마지막에 잔 다르크는 포위된 도시를 구하려다 붙잡히고 맙니다. 수개월의 심문 끝에 이단자라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고 화형에 처해졌지요. 하지만 20년 후 명예가 회복되었습니다. 4세기 후에는 나폴레옹에 의해 국가의 상징으로 봉해졌고, 결국엔 성녀(聖女)로 추앙되기에 이릅니다.
뮬란과 잔 다르크가 군에 입대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뮬란은 전통 중국 사회의 핵심 가치였던 효(孝)를 다하고자 했습니다. 남장으로 군에 입대한 사실이 발각될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지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애쓰면서도 나라를 수호하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냈습니다.
잔 다르크의 경우, 그녀를 이끈 것은 영적인 헌신이었습니다. 모두들 의심하는 가운데 신에 대한 반석 같은 믿음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전념했지요. 심지어 붙잡혀 학대를 받으면서도, 화염에 휩싸인 마지막 순간까지 줄곧 견정했습니다.
잔 다르크와 뮬란이 검을 뽑아 든 동기는 달랐지만, 이들이 보여준 결단력과 용기, 사심 없는 모습은 눈에 띄게 닮아 있습니다. 그중 한 명만이 션윈 무대에서 주연을 맡기는 했지만, 두 여걸 모두 역사상 뚜렷한 족적을 남겼답니다.
베티 왕 (Betty 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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