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와 같은 우리네 여정
“내 마음은 저 바다를 향하고 있네.” 한 남자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깊이 탄식하고 있다. 바다가 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일까. 아니면 보물을 찾겠다는 기대나 흥미 진진한 모험에 갈망 때문일까. 자, 보라. 바다가 우릴 부른다.
내가 너무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약간의 상상력이 더해질 때 삶은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법이다. 우리에게 투어 중 생활은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나 공연장에 가서 무용 연습을 하고 밥을 먹고 나서 몸을 푼 후 공연을 한다. 공연이 끝나면 호텔로 와서 잠을 잔다. 몇 개월간 같은 일정이 반복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은 관점을 바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뭔가를 생각하곤 한다. 요새는 드넓은 대양에서 펼쳐지는 삶에 골몰해 있다.
공연 무대는 배와 유사한 점이 많다. 얼마 전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다가 문득 무대가 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양쪽에 있는 커튼은 작은 돛과 같고, 무대 중앙에 걸쳐진 커튼은 큰 돛처럼 보였다. 무대 매니저가 뒷짐을 지고 진지한 표정으로 무대 위를 걸어가고 있는 모습은 마치 선장이 갑판을 살펴보는 것 같았다.
선원들을 크루(crew)라 부르는데 무대 스태프들도 같은 용어로 불린다. 배의 각 부분을 일컫는 용어도 무대 각 부분 명칭과 유사하다. 뱃머리는 무대 앞쪽, 고물은 무대 안쪽, 우현은 무대 오른편과 유사하다.
성공적인 항해는 부두(dock)에서 시작해서 부두에서 끝나는데 우리네 여정도 짐 싣는 곳(dock)에서 시작해서 짐 내리는 곳에서 끝난다.
배에는 돛을 당기는 선구(rigging)가 있는데 공연장에서도 로프와 파이프를 리깅(rigging)이라 일컫는다. 마치 무대처럼 배의 선장도 출항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큰 소리로 “레일에 올라 35번을 펼쳐라”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 20미터 높이에 있는 건장한 선원이 밧줄을 잡아 당겨 새로이 장착한 아름다운 돛을 펼친다.
공연장에서 무용수와 연주자들은 거대한 선박의 선원이다. 일등 항해사(지휘자)의 박자에 맞춰 우리 모두가 순조로운 항해를 위해 협력한다.
한국 영화 ‘해적’에 “한 배를 탄 운명”이라는 말이 있는데, 마치 공연 중 우리가 만들어가는 우정을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는 항해(공연) 중에 험한 날씨를 만나기도 한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태양 빛(무대 조명)이 눈을 찌르고, 안개(드라이아이스) 속으로 배를 몰고, 어둠(정전) 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항해가 시작되기 전 고요하고 텅 빈 바다(무대)를 보노라면 적막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몰려 온다. 하지만 일단 돛(커튼)이 오르면 흥분으로 가득 찬다. 열정적인 관객들의 바다를 보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우렁찬 박수 소리를 들으며 우리 마음은 바다 저 멀리 날아 오른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비슷한 점이 있다. 예전에 항해는 외국과 교역하기 위한 항로를 찾으려는 목적이었다. 선원들은 모험과 부, 명예를 기대하며 바다로 향했다. 많이는 실패로 끝났지만 운 좋게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공한 탐험은 역사적인 문화 교류를 열기도 한다.
명나라 시대의 탐험가 정화는 거대한 선단을 이끌고 세계 곳곳 미지의 세계를 탐험했다. 그가 배에 싣고 간 문물들은 당시 명나라의 부와 수준을 보여줬고 많은 외국 국가가 중원과 그 문명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도 매년 수백 만 명이 중국을 찾고 있고 중국 문물이 세계 곳곳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중국에 대한 관심이 여전하다는 증거다. 하지만 중국 전통 문화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거나 중국공산당에 의해 파괴되었다.
우리네 항해는 전통 중국문화를 부활시키려는 사명에서 시작됐다. 이 문화—다른 어떤 문화도—는 문물 이상의 것을 지니고 있다. 그 핵심은 면면히 전해진 이야기 속에 담긴 도덕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도덕성이 바로 우리가 일곱 바다를 누비며 세계와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로이스 광 (Lois Kuang)
Dancer
기고작가
2016년 5월 19일